재벌가 자제들의 수상한 농지매입

동부-일진그룹 골프장 부지 매입 의혹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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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유 기자
기사입력 2010-03-22 [09:24]

동부그룹 장남 음성군 일대 농지 매입… 골프장 건설 방해 위한 ‘알박기’ 작전?
일진그룹 차녀 매입한 농지 계열사에 증여하기도… ‘불법농지취득’ 의혹 불거져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좌)과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장남과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의 차녀가 각각 음성과 용인의 농지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현실상 재벌 자제들과 거리가 먼 ‘농지 취득’이기에 이와 관련된 의혹도 불거지고 있는 상황. 거기다 이들의 농지가 모두 각자 계획 중인 골프장 부지에 속해 있다는 점도 일각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농지 취득 시 직접 농업경영을 해야 하는 현행법을 무시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어 ‘불법농지취득’ 의혹까지 받고 있다. 농사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대기업 재벌 자제들이 왜 구설수까지 오르며 농지를 매입해야만 했을까. 동부그룹 장남 김남호씨와 일진그룹 차녀 허승은씨의 수상한 농지 매입에 대해 살펴봤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장남 남호씨가 2006년 12월부터 충북 음성의 일부 농지들을 매입한 것이 알려져 의혹이 쏠리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남호씨는 2006년 12월8일 충북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 산62번지 3만1339㎡(9480평)를 12억3000만여 원에 사들였다. 이어 동월 21일엔 차곡리 산61번지 6만694㎡(1만8360평)를 32억 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 ‘황태자’의 ‘알박기’ 의혹
 
거기다 남호씨는 이 부지들을 시세보다 2~3배 이상 높은 가격에 사들이기까지 했다. 농지로 구분되는 이 부지들을 굳이 이렇게 비싼 가격으로 매입할 이유가 있었을까.

이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이 땅들이 자스타와 동부 사이에 분쟁이 일고 있는 골프장 건설 부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자스타는 동부보다 먼저 골프장 건설 계획을 세워 음성군에 주민제안서를 보냈던 브라질교포들의 투자기업이다.
 
먼저 제안서를 보냈던 건 자스타 측이지만 뒤늦은 동부 측의 개입으로 음성 골프장 사업은 ‘잡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음성군, 그리고 자스타, 동부 간의 소송전이 벌어질 정도였다. 몇 차례의 소송 끝에 결국 음성군은 지난해 4월 말 자스타의 입안서를 받아들이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골프장 사업과 관련해 동부와 자스타 측의 분쟁이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남호씨가 2006~2007년 집중적으로 매입했던 차곡리 산61, 62번지가 문제가 됐다. 이 부지들은 자스타 측이 골프장을 건립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지였다. 원래 이 부지들은 자스타 측이 기존에 매매 계약을 맺었던 곳이었지만 남호씨가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 계약을 파기하게끔 만들었던 것.
 
결국 대기업의 물량공세에 자금력이 약한 중소업체 자스타의 부지 확보 계획이 무너져버린 셈이다. 거기다 ‘확인사살’을 하듯 2007년 5월, 남호씨는 자스타가 골프장 사업에 필요한 차곡리 625, 626, 627, 628번지의 4필지를 일시에 매입해버렸다. 이 역시 시세보다 높은 가격들로 매매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자스타 측은 “동부그룹의 횡포”라며 “속칭 ‘알박기’로 사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 유학생 신분이었던 남호씨의 수십 억대 부지 매입 자금에 대해서도 강한 의혹을 내비치기도 했다. 동부 측이 조직적으로 자신들을 방해하고 있다는 뉘앙스다.

뿐만 아니라 해당 부지에 대한 남호씨의 불법농지취득 논란도 제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현행 농지법 상 농지 취득은 자경 목적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아야만 한다. 즉 매입자가 직접 농업경영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2007년 5월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은 바 있는 남호씨이지만 실제 농업경영을 하지 않는 현 상황을 비춰 봤을 때 규정을 피하기 위한 허위사실을 기재, 자격을 부여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대법원 판례를 봐도 이 같은 경우는 농지법 위반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동부 측의 “기업이 부지를 매입하면 땅값 폭등이 우려돼 대주주의 개인 명의를 빌려 부지를 확보하게 됐다”는 해명도 남호씨의 농지취득 목적이 농업경영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 양측 모두 골프장과 관련된 의혹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보유 농지 계열사에 증여?
 
일진그룹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녀 승은씨다. 승은씨 역시 2002년 용인시 일대의 토지거래허가구역내 30여 필지(4만㎡)를 매입했지만 농업경영은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동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법농지취득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상태. 해당 농지에 골프장 건설이 계획되고 있다는 점도 동부의 경우와 판박이다. 일진그룹 계열사인 일진레저는 용인시 처인구 일대 18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에 대한 사업실시계획인가 및 설명회까지 마친 상태다.

동부의 경우와 조금 다른 점은 승은씨가 보유하고 있던 수십 필지의 농지들이 지난해 12월 말 일진레저에 증여됐다는 것. 자경 목적이 아닌, 그저 골프장 부지 확보를 위해 해당 부지들을 매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일반 법인이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을 수 없다는 현행 농지법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 원칙적으로 개인이 일반 영리법인에게 농지를 증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일진그룹 측은 “지난 2002년 이뤄진 부분이기 때문에 확인하기 힘들다”면서도 “용인시 처인구의 조치에 따라 토지거래계약허가를 받아 등기이전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지금까지 재벌 자제들의 수상한 농지 매입에 대해 살펴봤다. 공통점이 여럿 있다. 일단 농지 취득 과정에 있어서 ‘불법’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점과 그 배경엔 골프장 사업이 깔려있다는 점, 그리고 부지 확보를 위한 ‘알박기’식의 행태가 보인다는 점 등이다. 뿐만 아니라 이 배후엔 ‘회장님’들이 버티고 있을 가능성도 농후한 상황. 때문에 이번 의혹들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 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유 기자 thec98@sisa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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