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 못풀더니 北에서도 ‘팽’

대북사업 진통에 흔들리는 현대그룹의 ‘現代 정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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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유 기자
기사입력 2010-03-29 [08:59]

조건식 사장 ‘돌연 사의’ 이어 북측 ‘몰수 통보’… 되는 일 없는 현대아산
대북사업 안 풀리자 현정은 회장 ‘대통령 동문’ 장경작 사장 선임 ‘노림수’

 
▲ 현대그룹 연지동 사옥 [사진=뉴시스]    

답보 상태에 머물며 애를 태우고 있는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이 잇따른 악재에 신음을 거듭하고 있다. 2007년부터 현대아산을 이끌어 온 조건식 사장이 지난 3월18일 사의 표명을 한 데 이어, 북측이 같은 날 금강산 사업소를 통해 남측이 소유한 금강산 관광 지구 부동산을 몰수하겠다는 통지를 했기 때문이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기도 한 대북사업의 타격은 현대그룹에겐 막대한 손실이다. 지난해 현정은 회장이 직접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등 남북관계에 큰 진전을 보여주며 잠시 대북사업에 ‘봄’이 찾아오는 듯 했지만 결국 ‘도로아마타불’이 되는 듯한 모양새다. 뿐만 아니라 수익성을 떠나 ‘왕 회장’의 대북사업을 이어 받았다는 현대그룹의 정통성에도 큰 흠집이 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북사업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현대그룹에 대해 살펴본다.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맡고 있는 현대아산은 현재 깊은 침체기에 빠져 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을 시작으로 조금씩 삐걱대던 대북사업은 그 후 개성관광 사업 중단, 개성공단 직원 억류 등의 사건으로 점점 요원해져만 갔다. 이렇게 현대아산의 대북 관광 사업은 1년8개월 가까이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대북사업이 재개되지 못하자 현대아산의 사정도 함께 악화되기 시작했다. 1000여 명이나 되던 직원 수는 400여 명으로 줄었고, 매출손실도 2300억 원에 달하게 됐다. 거기다 직원들의 급여를 삭감하거나 체불하기도 하고 북한 사업소의 자산 일부를 매각하기도 했다.
 
▲ 최근 사임한 조건식 전 현대아산 사장 [사진=뉴시스]     

연이은 악재에 신음
 
그런 와중에 최근 조건식 사장이 사임을 발표, 현대아산을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2008년 8월 삐걱대던 대북사업을 타개할 ‘구원투수’로 대표이사에 취임했지만 채 2년도 못돼 자리에서 물러난 것.

지난해 직원이 북에 억류되자 16회나 개성으로 출퇴근하며 사건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섰고, 남북 당국과 꾸준히 접촉하며 관광 재개를 요청하는 등 대북사업 정상화에 노력했지만 조 사장은 끝내 틀어진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없었다. 조 사장이 직원들에 보낸 ‘사의’ 이메일에서도 그의 힘들었던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져 나온다.

때문에 현대아산 직원들 내부도 침통한 분위기다. “고뇌에 찬 결심으로 이해한다”면서도 얼굴에 드리워진 불안감을 지우진 못했다.

하지만 같은 날, 현대아산은 또 다른 악재에 신음해야만 했다. 북측이 금강산 사업소를 통해 남측의 개성사업권과 금강산 관광지구 부동산을 몰수하겠다는 통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조 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3월18일이었다.

북측은 또 “금강산과 개성 관광이 재개되지 않으면 4월부터 새 사업자에게 관광 사업자를 넘기겠다”고 통지했다. 이에 다급해진 현대아산은 북측의 진의를 파악하는 한편 입장문을 통해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과 개성 관광은 현대와 북측의 신뢰에 기초한 합의와 계약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라며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양측이 협의해 처리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현대아산 입장에선 자칫 잘못하면 사업권은 물론, 그동안 이루고 쌓아왔던 대북사업 및 북측과의 관계가 퇴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현정은 회장의 노림수
 
실제로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은 현대그룹에 있어서 중요한 사업 중 하나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왕 회장’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직접 물꼬를 튼 사업이라는 점에서 현대가(家)의 ‘숙원사업’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현재는 ‘정씨’ 가문이 아닌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에 현대가의 ‘정통성’을 부여해주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이 대북사업을 진행하면서 생긴 적자로 인해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까지 채권단에 넘겨줬고, 2003년 8월엔 대북송금 사건으로 당시 그룹 총수이자 현 회장의 남편이었던 정몽헌 회장까지 자살하는 큰 아픔을 겪었다.

지불한 대가가 큰 탓일까, 현 회장의 대북사업에 대한 열의는 상당하다. 지난해엔 딸 정지이 현대U&I 상무까지 대동하고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까지 했다. 이런 현 회장의 활약에 꺼져가던 대북사업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남북 간의 협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북사업 전개는 지지부진하게 펼쳐지며 현재까지 이르렀다. 동시에 현 회장의 리더십에도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때문에 일각에선 조 사장의 돌연 사의 표명에 현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예측도 내놓고 있다. 약 2년 동안 조 사장이 대북사업 전개를 위해 두문불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론 실패에 가까운 게 사실. 그런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 동문인 장경작 롯데호텔 전 대표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점찍어 놓고 있었다는 점은 현 회장의 의중을 간접적으로 내비쳐준다.

또한 장 사장은 북한과 관련된 경험이 전혀 없다. 현대그룹도 지금까지 ‘대북 이력’이 없는 사람들을 현대아산 사장으로 선임한 적이 없다. 특기 사항은 딱 하나 있다. 바로 그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 동문이라는 점이다. 대통령과 동문사이라는 점은 장 사장이 정부와 북한간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메신저’ 역할을 좀 더 원활히 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때문에 조 사장의 자진 사의를 두고 현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란 일각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 있어 보인다.

대북사업에 있어 2년간의 침체기를 겪고 최근 또다시 악재를 맞고 있는 현대그룹. 이번에 새로 선임된 장 사장이 향후 정부와 북한간의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푸는지에 따라 대북사업의 성패 여부는 물론, 현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
 
김정유 기자 thec98@sisa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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