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 브랜드 약진에 명품시장 긴장

日 백화점 몰락과 한국 백화점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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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유 기자
기사입력 2010-04-12 [09:44]

고급화에만 주력해 일본 고객들 백화점 외면
국내 백화점, 日백화점 몰락 반면교사 삼아야
 
▲ 국내 '빅3' 백화점들. 왼쪽부터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소유, 그 자체만으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할 수 있는(?) 명품브랜드들이 최근 국내 백화점들 사이에서 조금씩 그 콧대를 낮추고 있다. 국내 고객들의 뜨거운 명품사랑과 백화점들조차 명품매장 유치를 자신들의 ‘고급화 전략’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을 비춰봤을 때 의외의 전개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백화점에서만 명품을 구매할 수 있었던 옛날과 달리 현재는 고객들의 구매 채널이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중저가 브랜드들도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고급화 전략’을 고수했던 국내 ‘빅3’ 백화점들이 그 차별성을 점점 잃고 있다는 이야기로도 풀이된다. 또한 거시적 관점으로 봤을 때 최근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백화점의 몰락’과도 일부 연결되는 듯한 모양새다. 일본은 수년 새 연간 5개 백화점 점포가 폐점하는 추세이며 지난해엔 무려 9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1월엔 세이부 백화점 유라쿠초점이 연내 폐점을 선언했고, 지난 3월엔 도쿄 이세탄 백화점 기치조지점이 38년 역사의 종지부를 찍었다. 많은 일본 백화점들이 ‘자라’, ‘유니클로’ 등 SPA 브랜드들이 인기를 끄는 최신 유통 경향을 외면하면서 ‘차별화’를 위해 명품 등의 고가제품에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일본 백화점의 이 같은 몰락은 현재 국내 백화점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차별화’를 위해 명품 등 고가제품에만 치중했다가는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명품 위주의 ‘고급화 전략’에 목메고 있는 국내 백화점 시장을 일본의 사례를 통해 비춰봤다.

루이비통, 샤넬, 페라가모…. 가방 하나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브랜드들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명품에 열광해 왔다. 바로 자신의 등급을 한 단계 올려주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품 그 자체의 디자인이나 품질보다 브랜드 이름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국내 백화점들의 ‘명품사랑’

국내 유통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백화점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명품매장 유치가 자신들의 지위를 올려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최근 명품브랜드 루이비통의 수장인 아르노 회장의 방한에 국내 유통업계가 들썩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경영전략담당 전무를 비롯해 백화점계를 양분하고 있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부회장 등의 재계 거물들이 앞 다퉈 아르노 회장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루이비통의 매장 유치 및 확장을 논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명품브랜드그룹의 회장이라고는 하지만 재계의 거물들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게 참으로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국내 유통업계에 있어 명품시장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백화점 쪽이 그렇다. 옛날부터 백화점은 서민들에게 있어 ‘고급 이미지’로 통하면서 시장이나 마트 등과 다른 ‘차별성’을 보여 왔다. 명품브랜드들 역시 거의 백화점을 통해서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고급화 전략을 도왔다. ‘명품=고급=백화점’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셈이다.
 
때문에 명품브랜드들의 콧대는 하늘 모르고 치솟았다. 심지어 백화점들이 명품브랜드 입점을 유도하기 위해 내부 인테리어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일반 브랜드들보다 훨씬 낮은 수수료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명품매장들은 백화점 측에 어떤 보수도 지불할 필요 없이 그저 장사만 하면 됐다. 백화점들은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저자세’로 명품브랜드들을 대해왔다.
 
▲ 명품 대표브랜드 '루이비통'    
점점 콧대 낮아지는 명품브랜드

하지만 최근 들어 명품브랜드들의 콧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앞서 언급했던 ‘낮은 수수료’ 등의 이야기도 이미 예전 일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실제로 전통 명품의 대명사 ‘페라가모’는 백화점 내 주요 위치에서 멀어지면서 규모가 줄었고 ‘루이비통’의 계열사 브랜드인 ‘셀린느’도 조금씩 자리를 빼고 있는 실정이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명품’이 명품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과거 상위층 사람들만 소지하고 있던 명품들이 이제는 꼭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대중아이템’이 됐다는 이야기다. 한 예로 ‘루이비통’의 기본 무늬 가방은 여고생들조차 책가방으로 가지고 다니는 정도가 돼 버렸다.
 
‘짝퉁’이라 불리는 모조품들도 활개를 쳐 얼핏 봐서는 진품 여부도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비싼 돈을 주고 진품을 사봤자 누가 알아봐 주지도 않는다. 제품 자체보다 누군가가 우러러 봐주길 바라는 심리가 더 작용하는 고객들로선 허탈감만 느낄 뿐이다.
 
또한 고객들이 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졌다는 이유도 있다. 과거엔 오로지 소수의 매장 아니면 백화점 매장을 통해서만 명품을 접했던 고객들이 이제는 온라인 쇼핑몰의 발달로 굳이 백화점에 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거기다 온라인 쇼핑몰이 백화점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급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패스트 패션’ 시장의 확장도 한몫 했다. ‘패스트 패션’이란 싼값에 최신 유행 아이템을 선보이는 브랜드 시장을 말한다. 최근 국내에서 점포수를 늘리고 있는 ‘유니클로’, ‘자라’, ‘H&M' 등의 SPA 브랜드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에 맞게 디자인과 품질까지 신경 쓴 이들 SPA 브랜드들의 약진은 명품시장을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국내 백화점들은 여전히 명품시장에 목메어 있는 모습이다. 최근 명품매장의 매출신장률이 과거만큼 폭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진 않지만 백화점들에게 있어 고급화 전략은 포기하기 어려운 선택인 듯하다.
 
▲ 일본 대표 백화점 '세이부백화점'도 몰락의 길을 겪고 있다.    
일본 백화점의 몰락

국내 백화점들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일본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백화점의 몰락’ 사태와 일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지난달 14일, 도쿄 이세탄 백화점 기치조지점의 요시다 에이치 점장이 고개를 숙였다. “오랜 세월 저희 백화점을 사랑해주신 고객 여러분과 지역민, 그리고 기치조지 거리에 감사드린다.” 38년의 역사를 가진 도쿄 이세탄 백화점 기치조지점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끊임없는 적자 행진에 이세탄 백화점이 결국 항복한 셈이다.
 
일본에는 이 같이 적자에 허덕이다 폐점을 하는 백화점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태다. 최근 수년 새 연간 5개 백화점 점포가 폐점하는 추세를 보였고 지난해엔 무려 9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올해도 이런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했던 이세탄 기치조지점을 포함해 긴자의 세이부 백화점, 마쓰자카야 나고야역점 등 11개 점포가 폐점할 예정이다. 백화점 매출 역시 1998년 이후 12년 연속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과거 승승장구하던 일본 백화점들이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가 뭘까.
 
국가 구조적인 문제인 내수 부진과 디플레 영향은 뒤로 제쳐 두고 백화점 자체의 문제를 꼽자면 무모한 ‘차별화 전략’을 수위에 둘 수 있다. 불황에 허덕이는 고객들의 최신 유통 경향을 외면한 채 명품 및 고가제품들을 위주로 한 ‘고급화 전략’이 역효과가 났다는 소리다.
 
실제로 세계1위인 일본 명품시장의 규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1996년 약 2조 엔에 육박했던 명품시장 매출 규모는 지난해 절반인 1억 엔 이하를 기록하는 굴욕을 맛봤다. 명품매장 유치에 혈안이 됐던 일본 백화점들도 그 타격을 고스란히 받게 된 셈이다. 결국 외부 환경에 의해 변해버린 고객들의 구매 경향을 재빨리 감지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로지 ‘고급화’에만 목메 왔던 일본 백화점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했다.
 
그 와중에 ‘유니클로’와 같은 SPA 브랜드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1년 ‘유니클로 붐’이 일어나자 백화점의 의류품 매출이 확 꺾여버렸다.
 
백화점에 있어 의류품들은 주력 상품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SPA 브랜드들은 큰 규모의 매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백화점 내에 입점 시키기도 어려웠다. 때문에 일본 백화점들은 더더욱 ‘고급화 전략’에 매진했다. 중저가 매장과의 차별성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백화점들과 함께 현재 일본에 진출해 있는 명품브랜드들 역시 죽을상이다. 세계적 보석업체 ‘티파니’는 지난해 말부터 거의 모든 제품의 가격을 5% 내렸고 ‘샤넬’도 10만 엔대 나일론 가방을 매장에 내놓으며 자존심을 꺾었다.
 
▲ 국내 '빅3' 백화점들을 이끄는 '2세 경영인들'.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국내 백화점, 일본 전철 밟을 수도

이 같은 일본 백화점의 몰락은 국내 유통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문화·경제 등이 일본의 흐름과 비슷하게 나아간다는 경향으로 미뤄 봤을 때 국내 백화점들도 이런 몰락에 빠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 백화점이 한창 ‘잘 나갈 때’ 선보였던 명품 위주의 ‘고급화 전략’이 현재 국내 백화점들의 주된 전략이라는 점은 이 같은 우려를 더욱 해소하지 못하게 한다.
 
물론 일본의 경우는 극심한 불황으로 인한 내수 부진, 디플레의 영향이 컸다고는 하지만 국내의 사정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 정부가 발표하는 경기선행지수가 좋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지수와는 여전히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 고객들의 경우와 같이 한순간에 구매 경향이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2001년 일본에서 불었던 중저가 ‘SPA 브랜드 붐’이 최근 국내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모습도 향후 백화점들의 위기 가능성을 가늠케 해준다. 국내에도 ‘유니클로’, ‘자라’ 등의 SPA 브랜드들은 의류뿐만 아니라 액세서리, 가방, 구두로까지 아이템을 확대하는 등 점점 덩치를 키우고 있다. 패션에 민감한 일본의 젊은이들 역시 백화점의 명품들을 등지고 SPA 브랜드에 열광하는 추세다. 패션잡화 분야가 주 종목인 백화점들에게 있어 큰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무모한 ‘고급화 전략’이다. 이제는 명품과 같은 고가제품을 이용한 백화점의 ‘고급화’보다는 최신 유통 경향을 재빨리 파악, 유연하게 적용하는 전략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김정유 기자 thec98@sisa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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