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삼성가의 이방인이었다”

이병철 손자 이재찬 자살 왜?

가 -가 +

김희정 기자
기사입력 2010-08-20 [13:28]

[시사코리아=김희정 기자]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고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인 이재찬(46) 전 새한미디어 사장이 자택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가 중 유독 새한그룹에 계속되는 비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또한 새한그룹이 2000년 워크아웃으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사촌인 삼성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분가 후 불운 이어져…범삼성가 중 유일하게 몰락 
이건희 회장 등 삼성가, 이재찬 외면한 사연에 주목

 
▲고 이재찬씨가 거주하던 서울 용산구 이촌동 D아파트. 사진은 고 이재찬씨

사망한 고 이재찬씨의 최근의 근황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따라서 그의 자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한미디어의 흥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재찬씨는 고 이창희 회장의 4남 1녀 중 차남이다. 1989년에 미국 디트로이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새한미디어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의 부친인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차남으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인 이영자씨와 연애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희 회장은 1966년 한비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했다. 한비사건은 1966년 9월 22일 삼성계열의 한국비료주식회사가 사카린을 건설자재로 위장해 밀수입한 것이 폭로된 사건으로 이창희 회장의 형이자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씨 역시 한비사건에 연루되는 등 몇 차례 우여곡절 끝에 결국 후계구도에서 낙마하는 비운을 맞았다.
 
삼성에서 분가, 그 이후…
 
이창희 회장은 한비사건 후 일찌감치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에 나섰다. 60년대 후반에 삼성이 인수한 새한제지(현 한솔제지), 삼성물산 이사 등을 역임하긴 했지만 1970년대부터 그룹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사와 특수세라믹사를 통합해 새한미디어를 설립해 독자운영에 나서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다. 새한미디어는 국내 최초로 오디오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했으며 1982년에 비디오테이프 자체 개발에도 성공했다. 인천공장에 이어 비료산업 합리화 조치에 따라 매각된 한국비료 충주비료공장부지를 인수하여 1985년 2월에 충주공장을 설립했으며 1987년에는 테이프의 원료인 자성산화철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여 수출전략사업으로 삼았다.

1995년에는 삼성그룹에서 완전히 분가된 뒤 새한그룹은 새한, 새한미디어 등을 주력사로 삼아 한때 계열사 12개를 거느린 재계순위 20위권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지병인 백혈병으로 1991년 58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망했고 이후 새한은 부인 이영자씨를 회장으로 장남인 이재관씨를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97년 새한은 새 CI를 선포하면서 독립그룹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IMF 등을 거치면서 곧바로 경영위기를 겪고 만다.

이재찬씨는 당시 새한미디어가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 새한건설 사장을 겸임하며 새한미디어 그룹의 임원으로 있다가 새한미디어 부사장을 거쳐 1997년에 새한미디어 사장이 되었다. 이씨는 새한그룹의 새한건설 사장도 역임했다.

하지만 새한은 2000년에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채권단에 의해 새한과 새한미디어로 나눠졌다. 새한미디어는 이영자 여사와 장남인 이재관 부회장이 채권단에 지분을 양도한 이후에도 계속 경영에 관여했었으나 2003년에 형인 이재관 부회장이 분식회계를 통한 불법대출 혐의로 구속돼 경영권을 상실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이영자 여사도 경영에서 결국 손을 떼게 됐다.

새한그룹을 떠난 후 이재찬씨는 일산 등지에서 개인사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에 종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삼성가의 한 고위임원은 이씨의 사망소식이 알려진 후 “이씨가 자신을 찾아와 사업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주지 못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재계의 한 인사는 “새한이 부도를 맞을때 삼성측에 손을 내밀었지만 삼성에서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안다”며 전했다.

18일 새한미디어 관계자는 “이재찬씨가 새한미디어에서 일한 사실은 맞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새한미디어는 워크아웃 상태로 이씨 집안과는 완전히 단절된 상태”라고 전했다. <시사코리아>와 통화한 삼성 관계자 역시 “새한이나 이재찬씨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쪽 사정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재 새한미디어는 론스타로의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으며 지분을 채권단에 양도한 이영자 전 회장과 아들인 이재관 전 부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이 새한미디어가 망하자 이창희 회장의 장남 이재관씨를 삼성지사 미국법인으로 보내 먹고 살게는 해줬지만 소위 그들만의 서클안으로 끌어들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재찬씨가 생활고 또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경찰 역시 사업실패로 인한 스트레스와 생활고 때문일까에 대해 사망원인을 따져보고 있다.

그가 마지막까지 혼자 살았던 서울 용산구 이촌동 D아파트 같은 동에 거주하는 이모씨(76)는 “그가 밤늦게 들어오고 해서 동네 사람들과 잘 알고 지내지 못했다”며 “가끔식 밤에 혼자 소리를 지르곤 해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다른 주민들도 이씨가 삼성가 가족인 줄은 몰랐고 이웃과 접촉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망 당일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병원에 모인 유족과 친지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과 함께 일했던 한 지인은 “현재 외국에 거주하는 유족과 연락하고 있다”며 “유족들은 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매우 당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 전쯤 고인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한 지인은 “고인이 평소 사업 진행할 때 시작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했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다”며 “그것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많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지인들은 “사업상황이 어려웠으나 알려진 것과 달리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았다. 우울증 등을 겪지도 않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편 한 시민은 “사실상 삼성가에서 고인을 방치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실 삼성에서 분가한 그룹 중 유일하게 몰락한 기업이라는 오명을 남긴 새한과 함께 사라진 이재찬씨의 비운의 가족사 어디서도 범삼성가의 도움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김희정 기자 penmoim@hanmail.net

김희정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시사코리아. All rights reserved.